[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국 유일하게 해남에서 녹청자 재현에 성공해 3대째 도예가의 맥을 이어가며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도예가 남강 정기봉 동문을 만나봤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다니던 70~80년대 시절은 '학원소요사태' 때문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뿐 아니라 사회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80년대 광주 민주항쟁과 함께 슬롯 머신 프로그램 휴교령이 내려지고 최루탄가스에 눈물 흘리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슬롯 머신 프로그램 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는데, 바로 슬롯 머신 프로그램 친구들과 함께 그룹사운드를 결성하여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요제에 출전했던 경험입니다.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음악에 큰 매력을 느끼며 보냈던 슬롯 머신 프로그램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옹기를 굽던 조부께서 돌아가시게 되면서 교육자였던 부친(화원 정형식)께서 교직을 접으시고 '해남 녹청자를 우리 부자가 재현해보자'라고 저에게 제의하셨습니다. 그 때를 계기로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죠.
3대째 이어오는 도예가의 삶
옹기를 굽고 도공 일을 하셨던 조부를 시작으로 교육자에서 도예가의 삶으로 전환한 부친, 지금의 저, 그리고 현재 호남슬롯 머신 프로그램교 산업디자인과(도예전공)에 재학 중인 아들까지 도예가의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예가의 길을 가는데 있어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바로 '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교직 생활도 접으시고 가업을 잇기 위해 일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신 분입니다. 부친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게 되어 현재 남아있는 아버지의 유작이 매우 적지만 지금의 몇몇 작품들은 제 작품과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한 보물입니다. 이러한 선친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우리나라 도자기의 시원인 '녹청자'를 재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죠. 현재 우리나라는 전통 도자기 재현과 확실한 이론적립이 부족한 시기입니다. 특히, 청자(녹청자 포함)분야에 대한 높은 완성도가 필요하죠. 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채우기에는 아직 그 전 단계인 이론조차 미흡하고 체계화 되어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대를 이어가며 완성도 높은 작품재현과 새로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혼이 담긴 '녹청자'재현
대다수의 도예가들은 청자류 혹은 백자류 등을 선호하지만 저는 '녹청자'에 관해 유독 관심이 많았습니다. 녹청자란, 통일신라시대 때 토기에서 자기화가 되며 제작된 최초의 '자기'입니다. 해남지역에는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104개의 가마터가 있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도요지가 산재돼 있어 지금도 계속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녹청자를 재현하는 데 있어 재현모델로 삼을 만한 완벽한 작품이나 참고 문헌이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수많은 실험에 의해 재현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했습니다. 재현된 녹청자의 모습은 색이 곱고 온화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정서적 안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생소한 이름 때문인지 청자보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물러났던 녹청자가, 일본에서 순회 전시를 하던 중 청자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흙, 불,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하는 종합예술
가업으로 이어온 도예의 길이지만 너무 많은 고생과 노력에 비해 대접받지 못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고 도예의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운명이라 생각하며 15년째 도예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도예란,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한 분야라서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 인간만의 힘으로 완성 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흙, 불, 사람 그리고 자연이 꼭 함께 해야 만이 좋은 결과가 나오는 어렵고도 매력 있는 종합 예술이 바로 '도예'인 것입니다. 또한 세월이 흘러 나이가 더해질수록 더욱 친해질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도예인이란 어느 한 분야가 아닌 전 과정, 다시 말해 성형'장식(조각, 그림)'유약제조·소성까지 모든 공정이 마스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부분만 전문적으로 한다는 것은 전문기능인이라 생각되며 모든 부분을 포용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도예인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15년째 도예의 길을 이어가며 녹청자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해 석사학위를 받고 각종 공예도자기 공모전에서 수상경력을 쌓아 감으로써 종합예술로서의 도예의 의미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요즘같이 최첨단 시대에 젊은이들이 도예에 매력을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전통 도자기의 원천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여 지속적으로 개발한다면 도예가 그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력 있는 가능성과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 오는 10월 하순경에 일본에서 초대전을 열고 11월에는 협회전을 열어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나아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대한민국명장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청자와 녹청자를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도예의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했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고 정성을 다한다면 노력한 만큼의 실력이 되돌아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2009년 0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