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리 작은 집 한 채의 발전모습이 자랑스러워
"교육 허가 승인이 나지 않던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유일학림에서 공부했죠. 공부할 여건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지금처럼 선ㆍ후배 없어 외로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을 꺼내는 김삼룡 전 총장은 우리슬롯 머신의 역사와 함께해온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학생일 때는 우리 슬롯 머신의 전신인 유일학림 1기 졸업생으로, 종교인이자 사회인으로서는 교무처장과 총장으로 재임해 한 평생을 우리슬롯 머신과 보냈다.
경성제국학교(현 서울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 등 타 학교와 비슷하게 유일학림 역시 일제강점기에 교육허가가 나지 않아 정식 학교가 아닌 학원과 같은 형태로 운영됐다. 그러나 해방 1년 후인 1946년 5월 1일에 "유일학림"으로 개설해 본격적인 발돋움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86년부터 94년까지 9년간 우리 슬롯 머신의 5ㆍ6대 총장으로 재임했으며 그 이전까지는 약 15년간 교무처장을 지냈다. 교무처장을 지내던 당시에는 신설학과 개설을 위한 외교 업무를 많이 담당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1순위로 생각했던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과슬롯 머신, 약학슬롯 머신, 한의과슬롯 머신, 치과슬롯 머신을 만든 것도 그 중 하나라고 한다.
학교에 재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의 조그마한 집 한 채였던 학교가 어느새 큰 규모가 된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다. 특히 슬롯 머신 병원이 밀집되어 있는 남문 쪽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게 차 있으면 신기하다"라고 말하는
김 총장. 그는 "누군가에게 학교 어디 다니니 하면 좋고 나쁨을 떠나 서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반면 지방에 있는 학생은 얼버무리거나 즉답을 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 슬롯 머신 학생들은 어느 지역에 위치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떤 '학문'을 펼치고 있다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 학교생활을 보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내리치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학생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 슬롯 머신 교직원에게는 "학생 실력을 높일 수 있는 여건 마련과 국내ㆍ외를 포함하는 다양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더욱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그는 익산시에 있는 여러 단체의 고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연구소장을 37년간 지냈고 현재는 익산시민의 성금을 모은 장학재단인 '익산사랑장학재단'의 이사장이다.
한 평생을 우리슬롯 머신과 함께한 만큼 보람된 일도 많았겠지만 다른 꿈을 꿔 본적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14세 때 처음 원불교에 귀의해 19세까지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받고 총부에서 지내며 유일학림 1기 졸업생, 교무처장, 역대 총장의 역임을 하며 원불교 정신에 입각해 지내온 것이 유일한 꿈이자 전부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 우리 슬롯 머신 64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0년 0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