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8일, 우리넷마블 슬롯 동문 중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한 이가 있다. 그는 바로 현재 대우건설 부장의 자리에 앉아있는 소광호 동문(건축공학과 83학번)이다. 건축가를 꿈꾸던 그의 유년시절과 고민의 나날을 보낸 넷마블 슬롯생활, '좋은 아빠'이고픈 이야기 등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후배들의 꿈의 가치를 배가시켜주고 싶습니다."
소광호 동문은 현재 우리넷마블 슬롯 건축공학부 특수신분 교수로서 건축을 전공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후배들의 꿈의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라고 답하며 최근 건축을 전공하는 후배들과 함께하면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것처럼.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머지않아 후배들이 좋은 위치에서 자신들의 꿈을 펼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수신분 교수라기보다 선배 또는 형님으로서, 후배들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싶습니다."
'건축'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소 동문의 유년시절, 도심지와 시골에서 보았던 많은 집과 건물,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동네와 도시의 모습은 그를 건축가의 길로 인도했다. "지면 위에 펼쳐지는 멋진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내 일생을 바쳐도 후회스럽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죠"
자신의 유년시절을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며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어려운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도시락을 싸는 그의 어머니는 항상 "친구들하고 같이 나눠먹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온유함과 매우 강직하면서도 절제된 생활을 요구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비뚤어짐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부모닝을 생각하며초ㆍ중ㆍ고 시절 모두개근상을 탈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을 회싱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친구들과 함께 놀기를 좋아하면서도 모법적인 생활을 하는 학생이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 대표와 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리더십을 길렀다. 넷마블 슬롯시절 그는 그는 자신이 어떤 건축가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햇다. 한때는 유학을 꿈꾸며 E.E.C.A 학슐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영어 공부를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꿈을 이루지는 못했고 건축공학 넷마블 슬롯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설의 매력에 빠져있는소동문. "아무것도 없었던 대지 위에 커다란 구조물을 본인의 지휘로 건설하는 것은 상상 그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그는 대우건설에 입사한 지 약 20년이 지났고 부장의 자리에 앉아있다. 입사 당시에는 건설현장에서 아파트 건설, 병원건설을 위한 담당기사로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열정으로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의 문을 두드렸다.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처럼 두 번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그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약 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연구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직장 동료들(지금 넷마블 슬롯교직에서 약10여명 근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말이죠. 특히 제가 열심히 근무하고 학문적으로 깊게 연구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연구원 근무 후 대우건설 본사 근무, 프로젝트를 위한 건설현장 근무 등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지금은 서울시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잠심의 주상복합현장(지상39층 2개동, 연면적 약 89,000㎡)현장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8일, 울진공항 건설에 기여한 공로로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연륜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의 전환기는 많을것 입니다. 저 역시 여러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넷마블 슬롯시절을 꼽고 싶습니다. 전역 후건축공학과에 늦깡이 학생으로 입학해 공부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 이어서 진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걱정이 앞설 때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다스렸으며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가 졸업했을 당시, 사회는 '중동 오일쇼크'로 국가 경기는 물론 건설경기 또한 참으로 어려웠다. 때문에 그는 우리넷마블 슬롯 건축공학부 석사과정에 진학해 양극영 지도교수 밑에서 시공 및 재료 분야를 전공했다.
그가 힘들때마다 늘 뒤에서응원해주고 어려울 때마다 희망이 돼주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사실‘좋은아빠'는 되지 못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건설 현장근무를 3D 중의 하나라고 표현하듯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이제는 건설 근무환경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좋은이빠'가 되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추후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현장공법 개선 또는 현장실용화 관련 논문을 작성해 관련 학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실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서적을 집필할 것이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도전, 아직도 넘쳐흐르는 그의 열정. 100년 동안 남아있는 멋진 작품을 남기는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렇게 그와의 인터뷰를 마친다.
2010.11.01